당뇨 환자들이 손발이 저리거나 감각이 무뎌지는 ‘말초신경병증’은 잘 알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정작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 위장, 혈관을 조절하는 신경이 망가지는 당뇨병성 자율신경병증(Diabetic Autonomic Neuropathy)입니다.
“심근경색이 왔는데 가슴이 하나도 안 아팠어요.”
이것이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우리 몸의 경보 시스템인 ‘통증’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고 돌연사하는 원인이 됩니다. 오늘은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위험한 자율신경병증의 증상과 대처법을 심층 분석합니다.
1. 왜 신경이 죽어갈까? (고혈당의 독성)

신경세포는 전선과 같습니다. 전선 피복(미엘린 수초)이 벗겨지면 합선이 일어나듯, 고혈당은 신경을 감싸고 있는 막을 녹이고 신경에 영양을 공급하는 미세혈관을 막아버립니다.
문제는 이 신경이 심장을 뛰게 하고, 위를 움직이고, 혈압을 조절하는 사령관이라는 점입니다. 사령관이 죽으면 장기들은 제멋대로 작동하거나 멈춰버립니다.
2. 심혈관계 자율신경병증: 무통성 심근경색

당뇨 환자의 사망 원인 중 상당수가 심혈관 질환입니다. 자율신경이 심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증상이 나타납니다.
- 무통성 심근경색 (Silent MI): 일반인은 심장 혈관이 막히면 가슴을 쥐어짜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지만, 자율신경병증 환자는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체한 줄 알고 소화제를 먹다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 안정 시 빈맥: 가만히 쉬고 있는데도 심장이 1분에 100회 이상 미친 듯이 뜁니다. 마치 전력 질주를 하는 것과 같은 부담을 심장에 계속 주는 셈입니다.
- 기립성 저혈압: 앉았다 일어날 때 혈관이 수축해서 혈액을 머리로 올려줘야 하는데, 이 기능이 고장 나 핑 돌며 쓰러집니다. 낙상 골절의 주원인이 됩니다.
3. 위장관계 자율신경병증: 당뇨병성 위 마비

“먹은 게 안 내려가고 계속 얹힌 느낌이에요.” 단순 소화불량이 아닙니다. 위장의 운동 신경이 파괴되어 음식이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지 않고 썩어가는 위 마비(Gastroparesis) 상태일 수 있습니다.
- 혈당 관리의 적: 인슐린 주사는 맞았는데(혈당 강하), 위에서 음식은 내려오지 않으니(흡수 지연) 식후 저혈당이 옵니다. 그러다 몇 시간 뒤 음식이 뒤늦게 쏟아져 내려오면 늦은 고혈당이 찾아옵니다. 혈당 패턴이 엉망이 됩니다.
4. 기타 증상: 방광과 땀샘의 이상
자율신경은 온몸에 뻗어 있어 다양한 이상 신호를 보냅니다.
- 신경인성 방광: 소변이 찼다는 신호를 못 느껴 방광이 터질 듯 늘어나거나, 소변을 봐도 잔뇨가 심하게 남습니다. 이는 요로감염과 신장 손상으로 이어집니다.
- 미각성 다한증: 밥을 먹을 때 유독 얼굴과 머리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립니다. 반대로 발에는 땀이 안 나 건조해서 갈라지고 괴사가 일어납니다.
- 발기 부전: 혈관과 신경 반응이 동시에 필요한 남성 기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줍니다.
5. 진단과 관리법 (예방이 최선)
이미 죽어버린 자율신경을 완벽하게 되살리는 약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증상을 완화하고 진행을 멈출 수 있습니다.
- 자율신경 기능 검사: 심전도를 이용해 심장 박동의 변화(HRV)를 측정하거나, 기립 경사 테이블 검사를 통해 진단받을 수 있습니다. 당뇨 진단 후 5년 이내에 검사를 권장합니다.
- 위 마비 식사법: 지방과 식이섬유는 소화를 느리게 하므로 피하고, 부드러운 유동식 위주로 조금씩 자주(하루 5~6끼) 나누어 먹어야 혈당 널뛰기를 막을 수 있습니다.
- 저혈압 방지: 아침에 일어날 때 천천히 일어나고, 잘 때 머리 쪽을 약간 높게 하고 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6. 자주 하는 질문(FAQ)
Q1. 당뇨약 때문에 소화가 안 되는 걸까요?
일부 당뇨약(메트포르민 등)의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약을 중단해도 증상이 계속된다면 위 마비를 의심해야 합니다. 위 배출 검사를 통해 정확히 구별해야 합니다.
Q2. 심근경색을 미리 알 방법이 없나요?
통증이 없더라도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식은땀, 구역질, 턱이나 팔의 저림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 당뇨 환자는 매년 심장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Q3. 치료가 가능한가요?
혈당을 정상화하는 것이 유일한 근본 치료입니다. 증상 완화를 위해 위장관 운동 촉진제나 신경통 완화제, 항산화제(알파리포산) 등을 처방받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